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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수 교수님 칼럼 [경제와 세상] "올바른 세제개편은 대통령의 책무"

날짜 :
2021-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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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효율성·불평등완화 위해
'증세 對 감세' 프레임이 아닌,
불로소득 등 좋은 稅 늘리고
부가세 등 나쁜 稅 줄이는 게
제대로 된 세제개편의 본질


자고로 부와 권력을 가진 기득권층은 자신들에게 돌아올 공적 부담을 가볍게 만들기 위해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내야 할 세금을 없애거나 줄이는 동시에 대중의 부담으로 돌아갈 세금을 신설하거나 늘린다. 오늘날 한국의 기득권층도 예외는 아니다.


특이한 점은 이들이 세제개편 문제를 '증세냐 감세냐'의 문제로 환원한다는 사실이다. 한국 기득권층은 '증세 대 감세'의 프레임을 활용하여 여론을 오도하고,

이를 무기 삼아 자신들의 세금부담이 늘어나지 않도록 하는 데 성공해 왔다. 참여정부 때 그들이 보수언론을 통해 세금폭탄론을 제기하여 결국 종합부동산세를

무력화한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대선 예비후보들 가운데 증세를 공약하는 사람이 적은 것은 이처럼 잘못 형성된 여론을 의식한 탓이다.

조세제도는 경제의 효율성이나 분배의 형평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국가의 경제제도 가운데 가장 중요한 범주에 속한다.

이를 제대로 구축하는 것은 나라 살림을 책임지는 정치인에게 가장 중요한 책무임에도 한국 정치인들은 기득권층에 의해 오도된 여론이

무서워서 그 책무를 감당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들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이라곤 '증세는 정치인의 무덤'이라는 격언뿐이다.


'증세냐 감세냐'가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프레임이라면, 정당한 문제 제기는 최소한 다음과 같아야 할 것이다.

'마땅히 공적 부담을 져야 할 사람들이 조세를 회피하는 반면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세금이 버젓이 부과되는 현실을 바로잡아야 한다.' 보수파든 진보파든 여기에는 흔쾌히 공감할 듯하다.


일반 국민도 대부분 그럴 것이다. 세제개편의 본질은 증세와 감세 중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증세와 감세를 적절하게 조합할 것인가에 있다. 쉽게 말해 나쁜 세금을 줄이고 좋은 세금은 늘리는 것이다.

불로소득과 특권이익에 대한 세금은 좋은 세금이다. 이런 세금은 지금보다 훨씬 무겁게 부과해야 한다.

필자는 이를 '불로소득 우선과세의 원칙'이라고 부른다. 여기에 부합하는 세금으로는 토지보유세, 상위계층에 대한

무거운 소득세, 오염유발자에 대한 과세, 금융거래세 등을 꼽을 수 있다. 한편 경제활동을 위축시키고 분배를 악화시키는

세금은 나쁜 세금인데, 부가가치세와 부동산 거래세가 대표적이다. 세수 여건이 허락하는 한 이런 세금은 낮추는 것이 옳다.


증세냐 감세냐를 두고 다툴 이유는 전혀 없다. 그렇게 다투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불로소득과 특권이익에 대해

증세하고 노력소득에 대해 감세하는 것이 정답이다. 다만 현재의 세수 여건상 후자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기는

어려우므로 세제개편의 장기방향을 분명히 한 후 전자부터 실행에 옮길 필요가 있다.


한 가지 첨언하자면 국가 자원에 대한 사용료가 어떻게 징수되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모든 국민이 평등한 권리를 누려야 하는 이런 자원을 일부 기업과 개인이 독점적으로 이용하며 대가를

제대로 내지 않고 있다면, 이는 국가가 그들에게 공짜 선물을 주는 것과 같다. 실태를 정확히 파악해서

대가를 제대로 징수해야 한다.

이상과 같은 원칙으로 세제개편을 추진할 경우 경제의 효율성은 강화되고, 재정적자는 감축되며, 불평등은 완화될 것이다.

부담이 늘어나는 일부 기득권층의 반발이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정도의 개혁을 꿈꾸지 않는다면 대통령의 자격이 없다.

차기 대선에 출마한 후보 중 이 자격을 갖춘 인물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교수